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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To lead/Business

65.로마인이야기1

로마인이야기1/시오노 나나미/한길사


‘정치 건축의 걸작’


로마인은 패배하면 반드시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기존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개량하여 다시 일어서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지는 방식이 좋았기 때문은 아니다. 지는 데는 좋은 방식도 없고 나쁜 방식도 없다. 패배는 어디까지나 패배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패배에서 어떻게 일어섰는가 하는 것이다. 패전 처리를 어떤 방식으로 했느냐가 문제다. 



내정

기원전 390년의 켈트족 침략에서 로마인은 몇 가지를 배웠다. 

그 중 하나는 국론 분열의 어리석음이다. 귀족파와 평민파로 양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야만족에 불과한 켈트족한테 실컷 당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분열도 기원전 367년의 ‘리키리우스 법’으로 해소하는데 성공했다. 국정의 모든 요직을 평민 출신에게 전면적으로 개방한 이 정치 개혁은 얼핏 보기에는 평민에 대한 지나친 양보로 보인다. 기원전 300년에는 신에 대한 제사를 맡는 직책까지도 평민 출신에게 개방했다. 하지만 이런 개혁으로 로마는 귀족과 평민의 대립관계를 귀족이 평민을 끌어안는 관계로 바꾸었다. 그 결과는 금세 나타났다. 로마는 로마인이 가진 모든 역량을 투입할 수 있는 체제, 즉 국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체제를 확립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로마가 강대해진 첫 번째 요인은 로마의 독특한 통치체제 확립에 있었다고 생각한 그리스의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켈트족 침략에 대해 “이때를 계기로 로마의 융성은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외치

로마는 왕정 시대부터 이미 이웃 부족들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다. 

동맹군의 총지휘는 로마인이 맡기로 결정되었다. 역시 로마인의 군사력이 월등했기 때문이고, 다른 동맹국들도 여기에 반대하지 한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게 분명하다. 지휘를 로마인이 맡았다 뿐이지, 로마와 다른 부족들이 재건된 “라틴동맹”에서 얻은 이익은 완전히 평등했다.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도 절반은 로마에, 나머지 절반은 다른 동맹국에 분배되었다. 


이 시기의 ‘라틴 동맹’에도 결함은 있었다. 주도국 로마가 존망의 위기를 맞이하면, 다른 동맹국들은 로마와 공동보조를 취하는 이점을 잃어버리고, 그 결과 로마에 등을 돌리고 이반하기 쉽다는 결함이다. 기원전 390년의 켈트족 침략이 바로 이 결함을 표면화 시켰다. 


여기에는 로마도 어지간히 넌더리가 났는지, 기원전 338년에 대외관계의 근본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새로운 동맹 결성을 제창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무렵에야 겨우 로마가 원래의 힘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로마인은 보수적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진정한 보수는 고칠 필요가 없는 것은 고치지 않는 생활방식이 아닐까.


One point lesson

위기는 파도와 같아서 끝없이 밀려온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내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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